1. 꿈의 컴퓨터, 양자 컴퓨터의 시대가 온다.
"금고를 열어보니 그곳에는 원자 폭탄의 비밀이 전부 담겨 있었다. 플루토늄 생산 일정, 정제 절차, 필요한 재료의 양, 폭탄의 작동 방식 등. 로스앨러모스에 알려진 모든 정보가 모여 있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리처드 파인만의 말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물리학자이자 대중적인 지식인으로 아주 유명하지만, 흥미롭게도 금고털이에 능통했다고 알려져 있다. 애초에 그의 인생 자체가 문제 해결의 연속이었다. 당대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도 쩔쩔맬 만큼 어려운 문제들도 그의 손에 들어가면 간단히 풀리곤 했다. 원자 폭탄을 만들기 위해 극비리에 진행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는 병렬 컴퓨팅 기술을 고안하여 연산 시간을 크게 줄였다. 그로부터 약 20년 뒤에는 양자 전기 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학 연구 분야를 탄생시키며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챌린저 우주 왕복선 폭발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단에 참여한 바 있다. 그동안 다른 조사 위원들이 해 오던 방식과 달리 그는 엔지니어들과 직접 소통하며 사고의 원인을 파악해 나갔다. 파인만의 업적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테지만 그중에서도 우리가 특히 신세 지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이 지나더라도 그는 양자 컴퓨팅의 아버지로 기억될 것이다. 이 개념을 고안한 사람처럼 양자 컴퓨팅의 세계는 매우 어렵고 불가사의하다. 양자 컴퓨터를 세부적으로 나누자면 그 종류가 제법 다양하다. 미래에 당신이 어떤 유형의 양자 컴퓨터를 사용할지는 당신이 풀고자 하는 문제에 크게 좌우될 테다. 신약 개발을 위해 분자 모델링을 해야 한다면 양자 시뮬레이터가 적합하다. 공급망 최적화나 기상 예측을 해야 한다면 양자 어닐러를 사용해 보라. 쇼어 알고리즘으로 컴퓨터 암호를 해독하고 싶다면 범용 양자 컴퓨터가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양자 컴퓨팅은 이 책에서 다루는 기술 중 현재와 가장 동떨여져 있다. 빨라도 2030년은 돼야 쓸 만할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 양자 컴퓨팅에 뛰어든다는 건 1970년대 PC혁명에 참여하는 것 또는 1980년대 후반 인터넷 세계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이제 당신도 양자 골드러시에 참여한 셈이다.
2. 범용 양자 컴퓨터를 구현하기 위한 양자 역학 이해하기
수학자 서지 랭은 "당신에게 수학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숫자와 구조를 다루는 것입니다.라는 대답을 듣곤 한다. 그럼 내가 당신에게 음악의 의미를 묻는 다면 '음표를 다루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텐가?라고 말했다. 양자 컴퓨팅이 뭔지 배우고 싶다면 수학과 코드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입자 물리학 측면에서도 다루어야 할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가능만 하다면 지금이라도 곧바로 양자 컴퓨터의 핵심 원리로 넘어가고 싶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양자 역학을 짧게나마 설명해야 한다. 앞으로 살펴볼 양자 역학 이야기가 양자 컴퓨터 세계의 지도가 돼 줄 것이다. 양자 역학을 이해하려면 먼저 원자부터 이해하는 것이 좋다. 원자의 내부를 보면 양전하를 띠는 원자핵 주변으로 음전하를 띠는 전자가 궤도를 그리며 움직인다. 전자는 궤도를 이동할 때 그 사이를 연속적으로 부드럽게 이동하지 않고 한 번에 점프를 하며 이동한다. 궤도와 궤도 사이를 전혀 거치지 않고서도 궤도를 넘나 든다는 것이다. 이 현상이 바로 양자 도약이다. 그리고 이렇게 연속적인 값이 아닌 불 연속적인 값으로 표현되는 에너지를 양자라고 부른다. 우리가 익숙한 거시 세계를 보면 사물은 특정 시점에 특정 위치에 존재한다. 내 책상 왼쪽에는 머그잔이 놓여 있다. 만약 머그잔이 중첩돼 있다면 동시에 책상 위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다 내가 머그잔을 발견하게 되면 특정 위치로 붕괴될 것이다. 소립자는 관측되기 전까지는 중첩 상태로 존재하다가 관측이 되고 나면 한 곳의 고정적인 위치로 붕괴된다.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디냐는 언제나 확률적으로 결정된다. 이 사실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로 입증됐다. 현대 암호화 기법이 무너져버린 세상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누구나 모든 이메일을 읽을 수 있고 당신의 은행 계좌에도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다. 암호화는 오직 승인된 당사자들만이 통신이나 거래에 참여한다는 것을 보장하기 때문에 보안 측면에서 보자면 양자 컴퓨터는 병주고 약도 주는 존재이다. 오늘날 암호화된 정보가 계속 보관 되다가 어느날 갑자기 해킹 당할 지도 모른다. 누군가 먼저 양자 내성 암호를 사용하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미국 국가안보국은 빠른 시일내에 양자 내성 알고리즘으로 보안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바로 지금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효율적이고 안전하며 초지능적인 기술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딥테크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으로 말이다. 그곳에서 당신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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